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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손의 패션공부

[서양복식1-17] 영국모드가 끼친 후기 프랑스의 로코코 의상-남자의상

by 고양이손83 2024. 12. 9.

  로코코 양식의 모드는 프랑스 혁명때까지 복식의 전반을 지배하지만 18세기 중엽인 혁명 전반기에 벌써 다른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고전조의 간소한 아름다움이 로코코 양식에 섞였다.

우아하고 쾌락적인 로코코 양식은 고전적인 것과 부분적으로 얽히면서 특유의 곡선이 서서히 직선으로 변해 실루엣이나 장식 면에서도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이 같은 변화에 영국 모드의 경향이 겹치게 된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모드의 중심은 영국으로 옮겨졌다.

 환상적인 것은 가치를 잃었고 귀족풍의 화려함을 시민성이 대신하게 되었다. 남성복은 영국의 시민적 실용성이 모드의 방향을 규정하여 현대에까지 내려오고 있다. 시민성의 경향은 1770년대부터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여성화 되었던 남성복은 점차 여성적 색채를 덜고 새로운 모드는 간소하고 직선적인 성향을 띠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적으로 활동한 영국 군복에서 찾을 수 있다.

간소한 군복은 먼저 시민복에서 시작하여 귀족복에까지 영향을 미쳐 새로운 모드의 바탕이 되었다. 아비 아 라 프랑세즈는 차츰 여성적 경향이 사라지면서 기능적이고 직선적으로 되며 세련되어졌다.

 

 더욱 근본적인 변화는 영궁식 프락의 등장이다. 프락은 사치스럽고 불편한 프랑스 복장에 대한 반동으로 1770년경 영국에서 도입되어 아비 아 라 프랑세즈와 병행하여 쓰였다. 1780년대 들어 프랑스에도 복장 간소화의 경향이 있었다. 루이 16세는 영궁식 프락을 아비 아 라 프랑세즈 대신 공복으로 채용했다. 명칭도 프락 아비예로 바꾸었으며 19세기 이르러 상류사회의 공복으로 쓰였다.

 

18세기 후반 코트는 앞이 허리에서 단까지 엇비슷하게 재단됨에 따라 베스트도 길이가 차츰 짧아져 모양이 변했다. 루이 16세 때에는 영국의 질레가 베스트를 압도하면서 실내에서만 입는 사치품이 되었다.

 질레는 소매가 없고 길이는 허리까지 오며 밑자락은 수평이다. 앞판에만 고급재료를 사용하고 뒤판은 싼 재료를 사용하였다. 시민풍인 검소, 실용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복이 확립된 뒤에도 조끼로 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퀼로트의 길이는 1730년대부터 차츰 길어져 무릎 밑까지 내려왔다. 세로로 앞트임을 내고 단추를 채운 프랑스식 대신 영국식의 르 퐁이 18세기 후반에 등장하였는데 르 퐁은 허리까지 단추를 채웠다. 길이가 짧은 질레나 앞을 튼 프락에 따른 것인데 앞트임의 거북한 모양을 보이지 않게 하는데 효과가 있었다.

 

 1780년대 들어서 판탈롱이 유행하였다.  영국 수병의 바지를 본뜬 것이다. 장화에 닿을 정도의 길이였느나 후에는 길어져 뒤꿈치에 닿게 되었다. 판탈롱은 원래 원조 유목민의 의상인데 그 실용성 때문에 시민들 사이에 유행하였던 옷이다.

 

 로코코양식의 남성복에 대한 영국모드의 두드러진 영향으 르댕고트에서도 볼 수 있다. 르댕코트는 본디 영국의 기마복이었다. 1725년 무렵 프랑스에 도입되자 이때까지의 스페인식 케이프를 압도하고 대표적인 외투가 되었다. 처음에는 여행용으로만 쓰였지만 차차 일상복으로 보급되었다. 도입 초의 르댕고트는 실용성이 앞서 그리 볼품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적 감각으로 세련되어짐에 따라 루이 16세 때에는 모양이나 재료가 모두 품위를 더해 아비 아 라 프랑세즈 대신으로 쓰이기까지 했다. 1780년대 들어서 영국풍의 여러 르댕고트가 더욱 유행하였다. 그 중 르댕고트 아 라 레비트는 더블버튼이 특징이며 세 겹의 칼라가 달렸다. 절차 다리 부분에 장식을 더해 아비 르댕고트라고 하여 19세기까지 예복으로 쓰였다.

출처: 石山, History of fashion Plate I(17,18세기),文化出版局, 1989, p.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