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양이손의 패션공부

[서양복식1-7] 고양이손 패션공부-로마네스크복식

by 고양이손83 2024. 2. 20.

  동유럽에서 비잔틴 문화가 융성하는 동안 서유럽에서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기를 거쳐 중세 문화의 기틀이 될 독특한 성격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다.  유럽은 암흑시대를 거쳐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의 국가로 분리되었다.

암흑시대 서유럽인의 복식은 게르만적 요소가 바탕이 되고 거기에 로마적 요소와 비잔틴적 요소가 융합되어 고대 복식과는 다른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대이동을 거쳐 안정을 찾기 시작한 유럽은 게르만 민족이 주축이 되어 로마 제국의 정치적인 행정조직을 바탕으로 하여, 정신적인 면은 로마 가톨릭이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는데, 특히 게르만적인 요소로 대두된 봉건제도는 9세기 중기에 뚜렷한 형태를 갖추면서 11세기까지 유럽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중세 사회 형성의 기초를 이루는 절대적인 요인으로, 정신적인 면 외에도 교회는 기술학교로, 기능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교육을 받고 학식이 풍부한 성직자들은 세속적인 경향으로 흘러 권력을 추구하였고, 봉건 영주들에게도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교회의 세속적인 욕구와 봉건영주들의 후원으로 대규모의 성당 건축에 힘을 기울이면서 나타난 새로운 예술 양식이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초기에는 건축양식만을 의미하였으나, 오늘날은 당시의 모든 예술 양식을 지칭하는 것이다. 고전고대의 문화 전통을 배경으로 발달한 사회로, 건축양식 역시 로마 건축의 반원 아치와 원주를 응용하여 외관이 주는 느낌은 중후하고 소박한 양감으로, 경건하고 엄숙한 종교심을 느끼게 하였다. 조각의 주조는 기하학적인 문양 구성에 동방의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인 세계의 표현을 한 것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다양한 요인, 즉 고전고대의 문화, 로마 가톨릭교의 영향 외에도 새로운 중세 사회의 인적 요인 및 동방의 문화 등을 배경으로 하여 종굑적이고 고풍적인 것으로 형성되었다.

 로마네스크 복식의 일반적인 모습은 흰색의 리넨으로 만든 솅즈 위에다 블리오를 입고 맨틀을 걸친 것이다. 그러나 성직자의 복장은 비잔틴과 같았다. 서유럽에서 복식문화의 중심지는 프랑크 왕국에 뒤이어 탄생된 프랑스이다.

 솅즈는 언더 튜닉의 다른 명칭으로 란제리형의 원피스이다. 소매가 좁고 소맷부리에는 끝동을 달거나 수를 놓았다. 목둘레는 금실로 수를 놓았다. 앞 목둘레는 끈이나 단추를 여몄고, 블리고 밖으로 솅즈의 목둘레가 보였다. 윗몸은 꼭 맞고, 스커트 부분은 폭이 넓고 길었다. 옷감은 질이 좋은 마지묵이나 얇은 모직, 실크를 사용하였다. 남자들의 솅즈도 여자의 것과 같으나 여자의 것보다 장식이 간단하다. 13세기부터는 이 옷의 명칭을 슈미즈라고 하였다.

 11세기 초, 상체는 꼭 맞고 하체는 길이가 길고 폭이 넓어진 겉에 입는 튜닉을 블리오라고 하였다. 보디스는 꼭 맞고, 소매 끝이 넓고, 스커트 부분은 길고 넓어서 아름다운 잔주름과 드레이프가 생기는 옷이다. 블리오는 보디스와 스커트를 따로 떼어 재단하였다. 소맷부리가 넓으며 속에 입는 솅즈가 보인다. 목둘레 주위는 장식끈으로 트리밍을 하였고, 뒷중심에서 단추나 끈으로 여미게 되었다. 블리오 위에는 코르사주라는 소매 없는 재킷을 입거나, 허리에 천을 감아 허리선을 강조한 예도 있다. 남자들의 블리오는 무릎길이이고, 허리에는 벨트를 하여 허리에 주름이 잡혔다. 옷감은 동양에서 수입한 부드러운 견직물이나 모슬린을 사용하여 잔주름이 생기게 하였다. 여왕은 블리오를 입은 위에 금이나 보석 장식이 있는 거들을 엉덩이에 메고, 거들의 나머지 부분을 발끝까지 길게 늘어뜨렸다. 코르사주는 여자들이 블리오 위에 입는 소매 없는 조끼형의 옷이다. 목둘레에는 수놓은 장식선이 있으며, 목둘레가 좁은 것과 목둘레를 넓게 파서 블리오가 보이는 것의 두 가지가 있다.  길이는 엉덩이선까지 내려오고 허리둘레가 꼭 맞게 되어 있었고, 그 위에 가죽이나 헝겊 벨트를 하였다. 옷감은 얇은 천을 2~3장 겹쳐서 누비듯 스티치를 하고 그 위에 보석을 붙였다. 남자의 망토는 11세기경까지 무릎길이의 짧은 것이 많았다. 형태는 반원형, 타원형, 직사각형이 있다. 그러나 블리오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망토도 길어졌다. 입는 방법은 몸에 한 번 두르고 오른쪽 어깨나 가슴에서 핀이나 브로치로 고정시켰다. 옷감은 겉과 안을 대조적인 색으로 복식 미를 살렸다. 재료는 실크와 리넨, 모직물을 사용하였다. 담비 털, 수달피 가죽도 이용하였다. 프랑크족이 착용했던 브레와 거의 같은데, 일반 서민 남자들이 튜닉과 함께 입었다. 리넨이나 울로 만들었다.

 11세기경에 세워진 새로운 교회의 양식은 로마의 것 그대로는 아니고, 독창성이나 창조적 정신이 깃든 것이다. 게르만족이나 동방인이 가진 우상적인 장식 형식과 고대 그리스, 로마가 가졌던 자연적 인간상과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혼합성은 복식에도 나타나 비잔틴의 달마티카형 의복이 기본형을 이루었고, 그 위에 호화로운 장식이나 색채감각이 발휘된 모습은 확실히 종래의 게르만적 복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내륙지방의 한랭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비교적 몸에 붙는 의복형이 몸을 감싸는 헐렁한 의복과 함께 발발되었던 것은 비잔틴 양식과 근본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다. 더욱이 생산 규모의 확대로 수공업자는 반행상으로 바뀐 데다가, 동방과의 교역을 위한 원거리 통상이 활발해지는 등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그 결과 로마네스크 시대 후기의 의복은 신체 자체의 곡선을 부드럽게 살릴 수 있는 형태미와 자수, 다채로운 문양 등의 장식미가 혼합되어 중세적인 독특한 분위기를 지닐 수 있었다.

 

 

출처 : Poitiers Libr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