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시대란 게르만 민족의 하나인 고트 족에서 온 말이다. 비잔틴적, 로마적 문양이 후퇴한 후의 미술용이였다. 고딕 미술은 건축에서 역학적인 효과를 거둔 합리성 있는 독자적 성격과 새로운 인간성이 보이는 것을 특징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아미앵 대성당의 조각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건축 면에서도 이전의 것과는 전연 다른 방법이 생긴 것이다.
로마의 것과 동방의 것 모두 화려하기는 하였으나 13세기 이후의 것에 비교하면 평면적인 구성이었고 입체적인 구성이 못 되었다. 13세기 고딕 예술의 특징은 입체적이고 이지적인 구성으로 나타났다. 복식 면에서는 조형세계이 혁명이라고 할 만큼 많이 달라졌다. 이 시기의 의복 역시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면이 농후하였다.
고딕 건축양식의 특징은 첨두적인 외관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뾰족한 탑, 첨영 아치를 세웠고, 돌 대신 유리창을 많이 두어 전체적으로 힘있고 밝은 느낌을 준다. 고딕 건축의 첨두적 외관은 복식에 그대로 영향을 미쳐서 전체적으로 길고 흐르는 듯한 실루엣, 앞이 뾰족한 구두, 높고 뾰족한 모자, 소매나 옷단의 톱니 모양은 모두 이러한 예각적 감각을 반영하고 있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고딕 건축의 전형으로 빛과 순수한 색으로 당시 사람들의 종교감정을 자극했을 뿐 아니라 미적 감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로마나 비잔틴의 것을 모방하던 데에서 벗어나 유럽 인 독자의 힘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는 데 정진하는 시대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고딕 시대라고 부르는데, 북방인들이 독자적인 창작력을 발휘한 시대로 새로운 기능적 스타일을 창조한 시대인 것이다.
13세기부터 눈부시게 진전한 직물공업이 새롭게 번영한 고딕 양식의 예술과 교차하면서 특징적이고 복잡한 복장양식이 형성되었다. 직물을 충분히 사용한 안감에 의한 의복장식이 필요 이상으로 쓰인 기괴한 의복의 유행은 고딕 복장에 나타난 다양성으로 복잡한 정신생활과 다각적인 경제생활이 함께 반영된 것이다. 13세기 말부터 15세기 초까지 현저하였다. 십자군 원정에서 비롯되어 고딕 복식을 특정지은 것은 각 가문의 상징적인 문장의 사용인데, 원래 기사들의 기마경기에서 그들의 가족들이 자신의 가문을 구별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십자군전쟁 때 기사가 속한 영주의 가문을 표시하였는데 점차 평상시의 복장에 문양화되면서 장식과 신분 상징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복식은 로마나 동방의 복장을 떠나서 북유럽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형성하게 되었다.
남자의 기본복식은 코트를 입고 그 위에 쉬르코중에서 한 가지를 입고 맨틀을 걸치며, 아래에는 긴 양말을 신었다. 14세기에는 푸르푸엥, 쇼스를 입었다. 여자의 경우 코트, 쉬르코를 입었으며 후기에는 로브를 입었다.
코트는 윗몸에 꼭 맞는 튜닉을 말한다. 블리오보다 단순하고 소박한 옷으로 길이가 길다. 돌먼 슬리브에 소매끝을 꼭 맞게 한 것이나 타이트 슬리브였다. 목둘레가 둥글고 몸판과 엉덩이까지 꼭 맞고 밑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게 되어 있으며 옷감은 모지물을 주로 사용하였고 금사직이나 공단도 사용되었다.
코타르디는 14세기에 남녀가 모두 입은 옷으로 코트의 변형이다. 남자의 코타르디는 초기에는 무릎길이로 몸에 꼭 끼게 맞으며 단추를 촘촘히 달았다. 소매늩 타이트 슬리브이고, 엉덩이에는 보석으로 장식한 금속판 벨트를 하였다. 코타르디에서는 값이 가장 많이 나가는 것으로 재산의 많고 적음을 나타냈다. 여자의 코타르디는 쉬르코 속에 입는 곳이다. 몸통이 꼭 끼고 스커트는 여러쪽의 고어 스커트 형으로 아랫도련이 퍼지고 길이가 길었다. 소매가 매우 타이트하고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단추가 촘촘히 달린 것도 있었다. 목둘레를 많이 파서 목과 가슴을 노출시킨 것은 13세기까지 목을 감싸는 목수건이 사용되었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코타르디의 팔꿈치에는 좁은 천으로 된 긴 끈을 달았는데 티페라고 하였다. 티페의 폭은 좁던 것이 점점 넓어지고 길이가 길어져서 약 60~90cm나 되었다. 재료로는 견직물이나 마포가 있다. 영국에서 처음 유행 하였는데, 모타르디를 입고 말을 타고 달리면 이 티페가 바람에 수평으로 굽이치는 것이 매우 아름다운 율동미를 자아냈다. 쉬르코는 13세기의 가장 특징있는 의복으로 남녀가 다 입었다. 초기 구성방법은 어깨 너비의 직사각형에 긴 천을 반으로 접어 그 접은 선의 중앙에 머리가 들어갈 수 있게 목둘레를 파 뒤집어 쓰면서 입는 방식이었다. 장식적인 목적에서 입었으며 옷감도 차츰 고급화 되어 비단, 벨벳을 사용하게 되었고, 속에 입은 코트와 색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14세기와 15세기에 유행하였던 쉬르코의 변형은 코타르디 위에 입은 사이들리스 가운인데, 쉬르코투베르라고도 한다. 현대에는 점퍼 드레스라고 할 수 있다. 이 옷은 진동둘레가 엉덩이 선까지 길게 파이고, 털로 진동둘레를 장식한 것도 있다. 색깔은 선명한 단색이나 문장을 넣은 것, 좌우의 색이 다른것도 있다. 안감은 겉과 대조적인 색으로 하였다. 15세기에 쉬르코투베르는 짧은 것과 발목길이의 긴것이 같이 유행하였다. 길이가 짧은 것은 젊은이들이 주로 입었고, 긴것은 의식행사나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입었다. 캡 슬리브가 달린 쉬르코를 타바르하고 한다. 가문의 문장을 새긴 옷으로 주로 예복으로 입었고, 옷길이가 짧은 타바르는 기사가 입었다. 쉬르코의 변형된 의복으로 가나슈와 가르드코르를 들 수 있다. 가나슈는 케이프 슬리브와 후드가 달려있다. 겉감과 안감의 색을 다르게 하였는데, 흰색 겉감에 안을 녹색으로 한 것이나 오렌지색 안감에 빨간색 겉감으로 한 것 등 여러가지 색으로 배합하였다. 가르드코르는 특히 여행할 때 입는 옷으로 남녀가 다 입었고, 옷의 품이 넓고 긴 소매가 달려 있으며 진동둘레에 터진 곳이 있어서 팔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어 있다. 쉬르코의 변형된 옷으로 시클라스는 소매가 없고 겨드랑이 아래 옆솔기를 그대로 터놓거나 단추로 채우는것과 꿰맨것 등 여러가지 형태를 볼 수 있다. 시클라스는 일상복이라기보다는 장식용으로 입었다. 의식 때 입는 시클라스는 길이가 길고 금실을 넣어 짠 옷감을 사용하거나 수를 놓아 매우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웠다.
14세기 말엔느 의상을 과장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1370년경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우플랑드는 남녀가 다 같이 입었다. 품이 넓고 대개 하이넥이넉나 스탠딩 칼라가 달려 있어 귀에 닿을 정도로 높아졌다. 길이는 무릎 길이의 것과 땅에 끌릴 정도로 긴 것이 있었다. 앞중심이 트인 것이나 앞중심이 조금만 트여 단추로 여민 것이 있었고, 소매는 동양의 포처럼 넓고 가장자리가 잎사귀나 꽃잎 모양으로 매우 장식적이었다. 로 웨이스트에 띠를 매면 원주와 같은 주름이 잡힌다. 옷감으로는 견직물, 벨벳, 얇은 모직물 금직물 등이 사용되어다. 여자의 우플랑드는 남자의 것과 형태가 비슷하고, 길이는 발을 가릴 정도로 길었다. 푸르푸엥은 14세기에 들어와 갑옷이 쇠사슬 연결형이나 비늘 모양의 신축성이 있는 형태에서 금속판 갑옷으로 변하자 여기에 적응하는 옷이 필요하게 되어 남자들이 갑옷 속에 입었던 것으로 후기에는 푸르푸엥이 일반화 되어 웃옷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몸에 꼭 맞는 갑옷과 금속의 날카로운 가장자리에 몸이 상하는 것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심을 넣고 누벼서 몸에 꼭 맞게 재단하였다. 앞중심선이 트여 있고 단추가 연속해서 달려 있으며, 팔꿈치에서 손목까지도 단추가 촘촘하게 달려 있다. 안자락에는 끈이 달려 있어서 긴 양말이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시키는 기능이 있었다.. 15세기의 푸르푸엥은 남자들의 중요한 겉옷이 되었다. 옷길이가 매우 짧아졌고, 소매는 어깨에 풍선처럼 퍼프를 넣어 어깨선이 위로 올라갔다. 어깨가 넓어 보여 아래의 꼭 끼는 호스와 대조를 이루어 색다른 남성미를 나타내었고, 속에는 흰 셔츠를 입었다. 여자들의 겉옷은 15세기에 와서 로브 혹은 가운이 되어 유행하였다. 이 가운은 나라마다 디자인이 다르지만, 일반적인 특징은 목둘레가 둥글거나 네모난 모양으로 깊이 파이고, 보디스의 길이가 짧으며, 허리선이 약간 위로 올라간 형으로 가슴 바로 아래에 넓은 벨트를 하고 스커트 앞부분을 위로 끌어올려 핀을 꽂거나 손으로 잡아올려 드레이프가 생기게 입었다. 소매는 타이트 슬리브나 깔때기처럼 소맷부리가 넓게 퍼진 것 등 여러가지 모양이 있었다. 15세기 중기에는 목둘레가 V자형으로 벨트 한 곳까지 깊이 파여 이 부분에 삼각형의 가슴받이를 대거나 속에 슈미즈로 가렸다. 쇼스는 남자의 겉옷이 짧아짐에 따라 다리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튜브 모양으로 된 것을 양쪽 다리에 끼우고 허리까지 잡아당겨 고정시켜 입었다. 나중에는 양쪽 앞중심과 뒷중심을 꿰매어 팬티호스같이 되었다. 허리에서 발끝까지 연결도니 형으로 발목에서 이어진 솔기로 보아 발목 이하의 부분은 신발의 기능까지 하였으므로 발바닥에 다른 헝겊이나 가죽을 대었다. 앞중심에 댄 삼각형의 천에 심을 넣어 크게 돌출시켜 남성의 성기를 덮는 것이 생겨났는데 이를 코드피스라고 한다. 15세기 말에는 메리야스직이 발달하여 잘 맞는 양말이 나왔고, 양쪽 다리의 색이 다른 것, 무늬가 있는 것 등도 나왔다.
맨틀은 비잔틴에서 계승된 것으로 발끝길이에 품이 넓고 큰 것을 입었다. 귀족들은 색이 선명한 겉감에 보석, 진주 자수로 장식을 하였다. 모피를 경쟁적으로 사용하였는데 특히 다람쥐털을 맨틀 안에 대어 입었다.
출처: Bibliotheque National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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