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양이손의 패션공부

[서양복식1-10] 고양이손 패션공부-르네상스 인체미를 극대화 하다 2편

by 고양이손83 2024. 10. 18.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여자복식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유연한 여성의 자연스러운 체형의 선이 사라지면서 신체를 직선적으로 형식화하는 선형의 코르피케와 베르튀가댕이 후기에 유행하게 되었다. 코르피케를 착용할 때 늘어나지 않도록 견고한 심을 넣어 흉부와 허리를 꼭 조인다. 빳빳한 아마포로 안을 대고 가장자리는 철사로 선을 둘러서 목까지 닿도록 한다. 허리 부분의 앞중심은 V자형으로 하복부까지 연결되게 만들어졌다. 상체는 여성의 풍만한 선을 무시하고 역삼각형의 직선적인 형태로 되었기 때문에 코르케라는 용기 속에 동체가 들어가 잠긴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트임은 뒷중심이나 앞에서 끈으로 얽어서 여민다. 겉에서 보이므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감으로 싸고 수를 놓아 장식하기도 했다. 베르튀가댕은 스페인에서 전래된 일종의 언더 스커트로 원추형 또는 원형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었다. 단아함과 존엄성을 형성하는 수법과정에서 축소와 확대의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으므로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형태감각을 자극해서 또 다른 형으로의 발전을 보였다.

 새로운 모양의 베르튀가댕을 착용하고 그 위에 언더 스커트를 입으면 규칙적으로 잡은 겉의 스커트가 자연적으로 퍼지고 늘어져서 그 모양이 마치 드럼을 연상시켰다. 오스 퀴라고 하는데, 스페인식이 품위있는 안정감을 표현하는 데 비하여 오스 퀴는 당당한 박력을 느끼게 하였다. 오스 퀴는 철사나 심을 많이 이용해서 만든 자동차 타이어 같은 모양의 허리띠인데 언더 스커트 위로 허리부분에 끈으로 달아서 착용하여 다루기가 편리하므로 스페인식과 같이 사용되었다. 승마를 즐기는 프랑스 인이 애용하였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 때와 1586년~1588년경 또 새로운 형이 나타났다. 휠 파딩게일이라고 하는데 구성법은 스페인식을 토대로 하였다. 외형은 오스 퀴와 같은 모양이지만 강철사나 고래수염 같은 가는 줄로 둥글게 바퀴 모양을 만들었따. 상하의 지름을 똑같이 하여 마포 등에 붙여 고정시키고 끈으로 허리를 매었다. 외관이 호화스럽고 위풍당당하여 주로 궁정복이나 의식복으로 애용되었다.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있어 소수 귀족들이 사용하였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것을 애용함으로써 화려함과 위엄을 충분히 발휘하였다

 슬래시는 특징짓는 장식수법으로 남년 의복의 팔, 어깨, 가슴, 팔꿈치 등 나아가 남자의 하의에까지 폭넓게 적용된 장식법이다. 하의와 상의에 구멍을 내 속에 입은 슈미즈가 보이게 하여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중세복장의 불편함과 부자유스러움에 급속도로 변화되었다가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전쟁에서 찢어진 군복을 텐트나 깃발조각을 대고 기워서 착용하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하나, 그것이 독특한 장식법으로 발전하면서 슬래시의 방법은 가위로 옷감을 잘라서 구멍을 만들거나 뜨거운 인두로 태워서 구멍을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구멍을 통해 흰색 마나 견직물의 슈미즈가 보여서 입체적인 요철 느낌을 강조했다. 당시의 귀족들은 슬래시의 정교한 장식을 옷감의 문양 모양으로 이용했다. 따라서 진보된 기술과 숙련된 제작법이 필요했기 때문에 의복의 재단과 재봉기술의 진보를 더욱 촉진시켰다.

 세기 중반에 스페인에서 유럽 제국에 보급된 러프는 맞주름을 잡은 바퀴 모양의 칼라이다. 처음에는 슈미즈에 달린 주름 잡은 칼라였으나 대형화 되고 큰 주름의 수가 많아져 차바퀴와 같은 모양으로 변화하였다. 슈미즈의 칼라가 독립되어 장식화하려는 때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푸르푸엥의 칼라가 높아진 1540년경 목둘레에서 슈미즈의 칼라가 보였고, 1560년경 분리되기 시작하여 러프가 속옷의 칼라처럼 소형이었떤 것이 1570년경에 레이스가 장식용으로 붙게 되면서부터 대형화하였다. 1580년 대유행한 시기로 목밑에서 칼라 끝까지의 지름이 20~30cm  정도까지 커져 장중한 외관을 볼 수 있다. 대형 러프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7m이상의 옷감이 소요된데다 착용 시 불편했다. 귀족들은 대형을 즐겨 사용하였는데 호화스러운 외관은 마치 큰 쟁반 위에 얼굴이 얹혀 있는 것 같았다. 기교적인 러프는 1580년대의 전성기가 지나면서 간소화되고 단순한 칼라가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사라져 갔다. 과도기적 현상으로 편리하게 변화되면서 넓은 플랫 칼라로 변화한 것을 세기말에 가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백색과 엷은 색을 사용하였으나 때로는 적색, 청색, 황색, 녹색, 자주색 등도 볼 수 있었다. 귀족들의 사치와 권위의식의 발로로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장식했으며 서민층까지 영향을 끼쳤다.

소매장식은 르네상스 모드에서 주로 슬래시 퍼프 등을 기묘하게 응용해서 특이한 모양으로 구성한 것이다. 소매의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조화가 되도록 사선, 세로선으로 장식해 새로운 모양을 만들었다. 퍼프를 많이 이용해서 부풀리기도 하고 좁은 천을 나란히 이어 붙여서 주머니처럼 보이게 하였다. 푸르푸엥과 소매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1440년대 소매를 따로 만들어 붙이게 되었는데 소매는 더욱 다양해져서 특징 있는 소매가 탄생했다. 15세기 볼 수 있었던 행잉 슬리브가 있는데 팔꿈치 부분에 구멍이 있어 팔을 내놓으면 속에 입은 화려한 드레스의 소매가 보이게 되고 밑부분은 그대로 늘어졌다. 소매도 여러 가지로 변형된 모양을 볼 수 있다. 손목, 어깨 부분의 퍼프로 부풀리기도 하고 어깨 부분을 극단적으로 부풀리고 그 밑에서 손목까지 꼭 맞게 하는 숄더 퍼프 슬리브가 있으며 양다리 모양을 한 레그 어브 머튼 슬리브는 상류층 남녀 사이에 많이 사용된 특수한 소매이다. 그 외 슬래시 양쪽 귀에 보석을 달아서 장식하고, 슈미즈의 부드러운 옷감이 보이도록 한 것, 중심선을 군데 징거서 밑에 입은 드레스의 소매가 보이도록 한것 등 소매를 장식하는 데 모든 방법이 동원되어 르네상스 시대 고도로 발달한 미의식이 그대로 사회환경에서도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특이할 만하다.

출처 :  National Portrait Gallery (국립초상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