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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손의 패션공부

[서양복식1-9] 고양이손 패션공부-르네상스 인체미를 극대화 하다 1편

by 고양이손83 2024. 3. 28.

이번에는 우리에게는 조금 익숙한 르네상스로 공부하려고 한다. 중세도 영화에 잘 나오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르네상스 시대의 복식이 더 많은 영화에서 접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좋아하는 시대는 따로 있지만 공부는 해야겠다.

 

 인간성의 재생을 의미하는 르네상스 운동은 억압받아 왔던 봉건제도와 크리스트교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염원으로 로마, 그리스의 고전을 연구하였다. 복식에 미치게 된 것은 15세기 말경으로 16세기에 이르러 성황기를 맞이했다. 주도권을 가지고 지배했던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국력의 성쇠와 유럽 문화에서의 중심의 이행에 따라 이탈리아 모드 시대, 독일 모드 시대, 스페인 모드 시대로 대별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압적이고 호화찬란함을 풍기는 의상은 절대왕정의 권력과 상승도상에 있는 부르주아 층의 풍부한 재력을 과시하는데 충분했다. 남녀의상의 실루엣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남성들의 복장에는 상방신 볼륨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흐름이 있었고, 여성들의 복장에서는 스커트 볼륨의 증감과 함께 그 실루엣의 변화를 지적할 수 있다. 남성들의 상의인 푸르푸엥의 커다란 볼륨과 하의인 오드쇼스의 타이트한 약동감의 대비는 그대로 남성들의 에로티시즘의 표현이다. 여성들의 데콜테한 가슴과 가느다란 허리, 꼭 맞는 상의는 아래로 뻗치는 스커트로 인해 에로티시즘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로 남녀의 성 차이가 뚜렷해졌다. 이 시대의 의상이 현대 남성복의 기조를 이루게 되었다.

 푸르푸엥은 남자가 중세 후기 무장 밑에 착용하였던 동의가 일반화되어 시민들의 의복이 된 것이다. 16세기 전반기에는 체형을 과장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고안되어 전면에 얇게 심을 받치고 가슴 부분에는 특히 두껍게 하여 겉에서는 보이지 않게 누벼 만들었다. 가슴과 어깨 부분 등에 심을 많이 넘어 자유자재로 변형하고, 남자의 위력을 효과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부분을 더욱 강조하였다. 허리둘레선을 가늘게 함으로써 강조되는 동시에 각부의 변화가 절도 없이 진행되어 세기의 후반에는 더욱 현저하게 나타났다. 동체의 심을 양피, 캔버스 등으로 빳빳하게 하여 전면을 더욱 부풀게 하였고, 복부가 이상할 정도로 강조되었으나 이것이 유행의 초점이 되었다. 앞 중심이 트여 있는 형식으로 장식적인 끈으로 매거나 단추를 달았다. 점점 사치스러워져 보석 종류와 그에 달리는 수가 많아졌다. 단추를 끼우지 않음으로써 그 밑에 착용한 아름답고 사치스러운 슈미즈가 보이게 되었으므로 슈미즈를 선택하는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16세기 초엽에는 크게 파인 목둘레에 자연스럽게 슈미즈가 보였는데 1530년경부터는 목둘레선이 높아져서 목을 감추게 될 정도로 변하면서 푸르푸엥의 좁은 스탠드 칼라가 목을 둘러쌌다. 그 안에서 주름 잡힌 슈미즈의 칼라가 겹쳐서 보이게 되었다.

소매는 상의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푸르푸엥의 호화로움과 우아함이 좌우되었기 때문에 기발한 모양과 특수한 방법이 고안되어 르네상스 복식의 한 특징이 되었다. 모양이 점점 다양해짐에 따라 제작 과정이 복잡해졌고 착용하기도 불편해졌다. 소매를 별도로 만들어 붙이는 방법에 착안하였다. 소매를 붙인 선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으므로 그 곳에 에폴레트라는 별도의 천을 장식처럼 붙였으며, 때로는 늘어지는 소매를 따로 붙여 모양을 보기 좋게 하였다.

 16세기 중엽이 지나고 푸르푸엥의 급진적인 발전으로 가는 허리가 강화되어 보디스에 접속으로 인한 봉합선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앞 중앙은 뾰족한 삼각 모양으로 하여 가는 허리를 강조하고 남자의 위풍을 나타내는 형태로 되었다. 동부의 접속선 부분이 짧고 오 드 쇼스와의 접속점을 모양 좋게 가려 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푸르푸엥의 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재봉 기술도 놀라울 정도로 진보하였으며 숙련된 기술자의 힘이 커졌다. 재료로는 벨벳, 문직, 견직, 금은사직 등 사치스러운 것이 귀족, 신사들 사이에 애용되었고 그 화려함과 고귀함과 더불어 사치의 극치를 이루었다.

 쇼스는 양말인데 중세 후반 이후에 일반시민들이 착용하였다. 16세기가 되면서 장식성과 편리함이 한층 더 강화되어 새로운 형식으로 변하였는데 그것은 오 드 쇼스라고 하는 짧은 바지와 바 드 쇼스라는 양말의 두 부분으로 분리되었다. 오 드 쇼스는 변화가 심해서 각의의 역사상 가장 특이한 모양까지 나와 르네상스의 복식을 장식하였다. 신사, 귀족들은 타인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관심을 끌기 위해 호화로움과 신기함, 사치스러움을 서로 장할 정도였다. 1560년대에서 1570년대 중엽에는 국가에 따라 특징 있는 형태가 나타났다. 캐니언은 무릎 위부터 다리부분에 꼭 맞게 된 형태로, 단순해 보이고 장식적인 안이 대어져 있으며 바 드 쇼스는 그 위에 올려서 신었다. 트루스는 스페인식인데 길이가 매우 짧고 좁은 천을 이어 붙여 만들었다. 심을 넣어 크게 부풀린 모양으로 외관이 둥근 호박이나 양파처럼 생겼다.베니션은 무릎 밑까지 여유 있는 모양인데 심을 넣지 않고 약간 부푼 정도의 것이다. 그레그는 무릎 아래까지의 길이에 날씬해 보이는 모양으로 옆 솔기에 새틴이나 벨벳으로 가는 줄을 붙인 것인데 신사들이 파티에 참석할 때 이런 복장을 하였다. 오 드 쇼스의 재료로는 푸르푸엥과 같이 고급이며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이 사용되었다. 상의와 대조적인 조화를 이루는 것이 채택되면서 자수 등 더욱 호화스러워져서 세기 말엽까지 지속되었다. 바 드 쇼스는 비교적 큰 변화가 없었으며, 양말 형식이므로 각선미를 나타냈다. 길이가 긴 것은 상단의 장식적인 끈으로 맸으며, 때로는 오 드 쇼스에 달아서 착용하기도 하였다. 재료는 사용 목적에 따라서 견, 모, 포제등을 선택하였다. 중엽에 편물제가 나타나서 바 드 쇼스에 큰 혁신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양말로 발전한 첫 단계가 되었다. 편물에 무늬를 넣어 아름답게 짠 것이 있는데, 견사, 수편물의 바 드 쇼스는 귀중한 재산으로 여겼다. 색조는 일반적으로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자주색, 흰색 등을 즐겨 사용하였다.

 

내용이 너무 길어져 다음 게시물에서 이어서 공부하도록 하여야겠다.

 

 

출처: 프랑스국립박물관엽합(R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