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복식1-11] 고양이손 패션공부-바로크양식~호화분방한 정서의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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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손의 패션공부

[ 서양복식1-11] 고양이손 패션공부-바로크양식~호화분방한 정서의 표출!

by 고양이손83 2024. 10. 21.

16세기 말부터 시작된 종교전쟁 중 최대·최후 규모의 것은 30년전쟁으로 독일지방의 종교분쟁으로 시작되어 비록 동유럽의 한 지역에서 시작되었으나 각국의 대내외적인 사정과 얽혀서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국제적 규모의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종굑적 분쟁이라고는 하나 종교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에서 계속되었다. 30년전쟁의 결과 근대적인 국제적 외교가 수립되었고, 사회·문화적으로 네덜란드가 중심국으로 등장하였다.

네덜란드는 비족 잔은 구가였으나 유럽의 해상활동을 독점하였고, 아시아로도 진출하여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영국과 패권을 다투는 등 경제강국으로 유럽 세계에 부상하였다. 네덜란드 복식이 유럽 세계의 패션을 지배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종래의 르네상스풍의 복식과는 상반된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정치체제가 공화연방제였기 때문에 복식문화의 주체가 가문에 의한 귀족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이었으며, 프로테스탄트 신교사상이 생활지침이 되었으므로 귀족적 낭비와는 달리 절약이 미덕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복식은 귀족풍보다는 시민풍으로 호화로움보다는 합리성과 실용성을 위주로 입고 활동하는 데 보다 편한 것을 추구하는 새로운 경향을 지녔다. 실질적 취향은 1600년경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여 1630~1640년대 남년 복식은 완성된 네덜란드풍의 복장이 되었다. 직물이나 장식이 현저하게 단순화되었고 전체적인 실루엣이 여유가 있는 형으로 변화하였다.

바로크 시대 초기에 유럽은 30년전쟁으로 네덜란드가 경제적 중심국으로 대두되는 사회상의 변화가 일어났다. 의생활에서도 르네상스 시대와는 달리 귀족이며 화려한 장식이나 의상이 사라지고 검소하고 실용적인 복식이 유행하게 되었다. 30년 전쟁은 무엇보다 네덜란드의 실용적인 복식이 남성복에 도입되어 후기 남성복의 근대화를 이루는 데 큰 작용을 하였다.

바로크란 1580년경부터 1715년경까지의 감각적이고 비고전적인 효과를 노린 운동감이 넘치는 미술양식을 말하는데, 바로크의 어원은 일그러진 진주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barrucca' 또는 포루투갈어 ’barroco'에서 유래한 것으로 변칙’, ‘이상’, ‘좋은 취미에 맞지 않는’, ‘기묘한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2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곡선이 많은 과다한 장식의 건축이나 장식을 얕보는 말로 쓰였다.

바로크 양식은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직석보다 곡선을 많이 사용한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데 자재나 소재의 선택이 자유로워 극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었고, 또한 정교한 도금을 많이 장식하였다. 종교의 지배를 벗어나 활기를 띤 시대사조에 부응하여 생긴 자연의 모습인데, 여기에 계몽주의자들의 영향을 내세에 대한 동경보다는 현세에서의 향락 추구를 인생의 목적으로 여기게 되자 더욱 호화로워지면서 성행하였다.

17세기 이르러 스페인은 쇠퇴하고 네덜란드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영국의 진출상도 놀라웠으며, 17세기 후반 프랑스는 루이 14세의 진출로 강대국이 되었다. 루이 14세 때는 왕정의 극성기로 스페인을 제외한 유럽의 모든 나라가 프랑스의 뒤를 따랐고, 루이 14세를 보좌한 명재상 콜베르의 중상주의 정책으로 정치적 성공과 장식가인 르브룅의 예술적 보좌로 바로크 양식의 예술적 발전을 보게 되었다. 프랑스는 전제왕정 아래 새로운 귀족문화의 출현으로 바로크 예술의 상징인 호화스러운 베르사유궁을 탄생시켰으며, 17세기 강력한 국가로 등장한 프랑스는 유럽 문화를 이끌어 가는 지도국가가 되었다. 프랑스 사회는 왕을 중심으로 한 상류층의 호화로운 생활이 유행한 궁정문화 중심 사회로, 복식 또한 귀족적인 색채를 띤 호화로운 복식으로 되었다. 이러한 복식은 남성복에 더욱 많은 영향을 끼치었다. 바로크 양식의 호화로운 의복을 생산하기 위해 고급진 모직물이나 견직물 등 낳은 직물이 소요되었으나 프랑스 정부의 정책적인 수입금지로 국내의 직물을 사용하였고, 그로 인해 직물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되었다. 특히 루이 14세는 급증하는 레이스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레이스를 만드는 기술자를 데려와 생산하도록 하여 레이스 직물 또한 눈부시게 발전을 하였다. 의복에 관하여 금지사항이 많았는데, 금은을 의복에 사용하는 것은 금지하여 리본 루프 장식이 커다랗게 유행하였다. 이로 하여금 환상적이고 부드러운 경향의 꽃과 꽃다발 모양, 리본과 고급스럽고 우아한 레이스의 밴드 등을 장식하여 마치 물결치는 듯한 곡선이 주된 장식모티프가 되었다. 부드럽고 호화스러운 장식 모티브들은 각각 사용된 것이 아니고, 한 종류의 옷에 모두 함께 사용되어 바로크 양식 특유의 복잡함을 창출하였다. 바로크 양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는 단추였는데, 기능적인 용도 외에 장식적인 용도로도 많이 사용하였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단추를 수직으로 촘촘하게 배치하였다.

바로크 양식 복식의 특성은 여성적인 취향으로 과다한 장식으로 인한 복잡성과 장식 모티브 등의 배치로 인한 물결치는 듯한 곡선, 남성적인 호화스러움, 유동적인 운동감이 있다. ‘일그러진 진주라는 의미와 같이 의상은 이상하고 기묘한 이미지를 주면서 생동감을 나타낸다. 르네상스 양식은 조화를 중요시하여 고전적인 반면에, 바로크 양식은 리드미컬하고 약동적인 것이 특징이다.

 

다음장에서는 바로크 양식의 의상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렘브란트, 마르텐 솔만스(Maerter Soolmans)의 초상, 1634, 캔버스에 유체, 209.5x135.5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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