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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손의 패션공부

[서양복식1-5] 고양이손과 패션공부하러 로마로 떠나자

by 고양이손83 2024. 1. 4.

 그리스에 이어 로마 복식에 대해 공부를 하는 날이다. 그나마 우리에게 그리스, 로마는 신화로 친근하여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생각이다.

 

 그리스 문화를 로마화하고 실용적, 현실적 문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지중해의 중심인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하고 있다. 주위의 여러 민족과 쉽게 접속할 수 있어 국제적인 문물의 교류가 일찍부터 이루어졌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로마 의복이 그리스와 같은 드레이퍼리성 의복으로 된 요인이다. 자연이나 그리스적 신화를 숭배하는 것으로,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종교 관념은 문화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좋은 점을 모방하여 자신들에게 맞는 문화로 재생시키는 지극히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크리스트교는 현세적인 로마인들의 종교관에 천국이라는 내세 관념을 불어넣음으로써 가난한 자유민이나 포로, 노예들 사이에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크리스트교는 로마 복식, 그리고 서양 복식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위엄, 양감, 박력이라는 특성은 지리적, 인문적, 역사적 배경보다 독특한 사회제도에 의한 영향이 크다. 전설에 따르면 라틴 종족에 의해 건설되었다. 정복에 의해 영토 확장을 하는 동안, 새로 편입된 이민족들은 평민으로 불렸고, 재산분배권이나 토지소유권 등 공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민족과 본래의 시민들 사이에는 오랫동안 대립이 지속되었다. 정복에 따른 노예제도는 그리스보다 로마에서 더욱 발달하였다. 귀족층의 세력이 증대되었는데, 가옥의 장식, 의복, 사치품 등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복식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반면, 사회는 방종과 사치로 문란하게 되었다. 영토와 재산의 차별제도 아래에 구축되었고, 토지 소유에 대한 야망, 특권계급에 대한 동경 등이 성격을 현실적이며 박력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성격들이 건축과 의복에서 최대로 발휘되었다. 에투루리아는 로마의 원주민이다. 로마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에투리리아 문자는 아직 해독되지 않았다. 유품 또한 적어 완전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에투리아의 복식은 소아시아, 이집트 등 고대 오리엔트와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 크레타 등 여러 나라의 복식을 혼합하였다. 크레타의 영향을 받았고 할 수 있다. 블라우스와 스커트, 그리스의 트레이퍼리형, 이집트에서 유래한 듯한 수직 방향의 주름, 소아시아의 화려한 색의 트리밍 등이 나타난다. 테베나는 에투루리아 인의 독창력에 의해 만들어졌다. 타원형이나 원형의 천을 몸에 걸치는 드레이퍼리이다. 착용법은 그리스의 히마티온을 모방하였다.

 

 토가는 그리스의 히마티온에서 발달하였다. 팔각형, 반원형, 타원형의 천을 접어 몸에 둘렀다. 두르는 방식은 그리스의 히마티온과 본질적으로 같다. 재료로는 주로 울을 사용하였다. 부피가 커지면서 리넨이나 실크, 울 등도 사용하였다. 로마의 대표적인 의복으로, 초기에는 남녀노소 모두 착용하였다. 제정 시대부터는 공식복으로 지배계급의 남자들만 입었다. 후기로 갈수록 점점 복잡해지고 형식화되었다.제정말기에는 토가는 관복이 되었다. 색상이나 트리밍 또는 입는 방식 등이 계급에 따라 구분이 생겼다. 토가의 크기가 너무 커지자 평상복으로 입기 불편해졌다. 의식 때만 입고, 대신 토가 밑에 입던 튜니카를 평상복으로 입었다. 토가를 잘 입게 되지 않으면서 크기가 다시 작아지고 긴 장식띠인 로룸으로 바뀌었다. 사회상을 반영하면서 변화해 간 것이다. 튜니카는 튜닉의 라틴명이다. 그리스의 도릭 키톤에서 발달한 원피스 형식의 옷이다. 초기에는 한 장의 직사각형 천을 둘로 접어 머리 부분을 파내고 옆 솔기선을 진동을 제외하고 모두 꿰매어 토가 속에 착용하였다. 토가가 공복이 되고 일반적으로 착용되지 않게 되자 튜니카에 소매를 달아 겉옷으로 착용하게 된다. 남자들이 착용하는 튜니카는 길이가 무릎 밑까지 내려오고, 의식 때나 여자들, 고관들은 발목까지 내려오게 착용하였다. 재료로는 보통 흰색의 모나 리넨을 사용하였다. 노동자들은 장식이 없는 것을 착용하였다. 제정 말기에 와서 귀족들은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상징적인 장식을 사용하였다. 무릎과 어깨에 팔각이나 사각 또는 원형의 직물인 세그멘티를 붙이거나, 붉은 자주색의 트리밍을 앞뒤 어깨에서부터 단까지 수직으로 대었다. 스톨라는 그리스의 키톤이 약간 변형되어 발전한 것이다. 여자들은 튜니카보다 넓은 스톨라를 입었다. 초기에는 흰색 울, 후기에는 노란색, 푸른색, 붉은색 등의 면이나 리넨, 실크 등의 천으로 만들고 금실로 수를 놓았다. 스톨라 속에는 언더 튜니카처럼 소매 없는 스톨라를 입었는데, 스부쿨라라고 불렀다. 그리스의 히마티온을 여성이 착용하였을 때는 팔라라고 하고, 남성이 착용하였을 때는 팔리움이라고 하였다. 토가와 비슷하게 직사각형의 천으로 되어 있었고, 주로 모직물이었다. 튜닉이나 스톨라 위에 몸을 싸듯이 둘렀다. 숄처럼 사용하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착용하였다. 색은 청색, 황색, 자색, 적색 등 다양하였고, 모직물 외에도 마나 겨도 사용하였다. 로마인들도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금발을 이상으로 생각해 블론드의 인모를 북켈트 족으로부터 수입하거나 게르만족으로 구입한 비누를 이용하여 머리를 갈색이나 흑색으로 물들였다. 청색이나 황색은 야하다 하여 창부의 색으로 여겼다. 기혼부인들이 복잡한 머리모양을 즐겼고, 미혼녀들은 단순한 머리모양을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천 조각에 불과하던 머리띠는 보석으로 장식된 관 형태가 되었다.

 

 로마의 복식은 독창적이라기보다는 그리스 복식을 계승한 것이다. 단지 의상의 부피가 커지거나 양감이 더욱 강조되었다. 제식에서 토가나 베일을 사용하여 머리를 감추는 관습이 있었고, 그리스에서 신부의 흰색 베일이 로마에서는 크리스트교 신부용으로 사용하였다. 로마인들은 오렌지색이나 심홍색의 베일을 썼다.

 

 

출처: 패션전문자료사전(1997.8.25)